[4세부] “현장의 문제를 풀자” 사업화에서 사회문제까지 고민

2026-04-14l 조회수 95

[THE ANCHOR] ①서울대 기계공학부 ‘학제 간 캡스톤 설계’

전환기 맞은 대학교육의 현장을 가다…기업·사회 과제에서 출발
서울공대 안성훈 교수 창업수업 '입소문'...연구소 1층 홀을 강의실로
지나가던 학생들도 수업 참관…창업·투자까지…강의실 넘어선 스타트업 場


정부는 최근 지역대학을 지역소멸 대응의 핵심 거점, 이른바 ‘앵커(ANCHOR·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 옛 라이즈)’로 재정립하려는 정책 전환을 알렸습니다. 앵커 체계가 지향하는 대학교육 혁신은 △창업교육 △지산학연 협력 △현장실습과 계약학과 등 수요맞춤형 인재 양성 △초광역 공유대학 구축 △기술사업화 등 대학의 기능을 지역산업과 긴밀히 연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교수신문>은 기획연재 ‘THE ANCHOR’를 통해 앵커 체계에서 이뤄지는 전국 곳곳의 대학교육 혁신 현장을 찾아갑니다. 연재를 통해 대학에선 어떤 교육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며,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지역혁신의 실질적 거점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조명합니다. 
기획연재 ‘THE ANCHOR’의 첫 번째 강의실은 스타트업 산실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대 기계공학부의 수업 ‘학제간 캡스톤 설계(담당교수 안성훈)’입니다. <편집자 주>



▲안성훈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학제 간 캡스톤 설계' 수업 모습.


 대학 교육이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산학협력에 기반한 취·창업을 강조하던 데서 나아가 강의 자체가 사회와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전보다 더 현실 친화적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정부도 지역의 문제를 지역인재들이 직접 고민하고 풀어내는 인재 양성체계(앵커·ANCHOR)에 연간 2조 원을 투입하며 대학 교육의 혁신을 추동하고 있다. 더불어 인공지능(AI) 기술이 세계적인 흐름을 형성하며 고등교육 인재 양성 즉 대학 교육도 변화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특히 AI 인재 양과 맞물린 앵커체계에선 과거 강의실 중심의 지식 전달(학습)을 환영하지 않는다. 대학 강의는 ‘듣고 배우는 수업’에서 ‘현장에 곧바로 쓰일 교육’으로 이동하고, 학점은 시험이 아니라 프로젝트·실습·창업 경험으로 바뀌는 추세다.
 창업교육의 확대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앵커체계에 따르면 창업휴학, 창업학기제 도입으로 ‘창업도 하나의 정규 학습 경로’로 인정하며, 대학은 강의실을 넘어 창업 생태계의 허브로 전환된다. 기술개발, 시장검증, 투자 연계 까지 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강의와 사업화의 경계도 흐려진다.

 캠퍼스도 바뀐다. 대학 내 공간은 강의실 중심에서 기업·연구소와 공유하는 협력 공간으로 재편되고, 연구·실증·사업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오픈 캠퍼스’가 확산된다.
학생은 강의실이 아닌 산업 현장과 흡사한 환경에서 학습하게 된다. <교수신문>은 앵커체계가 예고하는 대학 교육 혁신의 모습을 심층보도키로 했다. 강의, 학점, 캠퍼스, 학습 주체까지 일대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대학의 현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다.

기획연재 ‘THE ANCHOR’의 첫 번째 편은 서울대 기계공학부의 안성훈 교수의 강의실이다. 안 교수는 캡스톤 디자인(프로젝트 중심 교육)수업을 통해 학생 창업을 북돋고 있다. 서울대 라이즈(현 앵커)센터의 지원으로 한 학기만에 특허부터 창업까지 연결시키는 과업을 이어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학생과 사회를 잇는 전환기 대학교육의 생생한 현장을 엿본다.

“탄자니아서 캐슈넛 사업 하겠다”…불확실성과의 싸움 시작

 
지난달 31일 오후 1시 30분 서울대 관악캠퍼스 313동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1층 홀. 스타트업 피칭 현장을 방불케 하는 공간에 학생 40여명이 모였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은 학생들은 노트북을 열어 시장조사 분석 보고서와 발표문을 점검했다. 창업 아이템 발표 날이다. 서너명씩 짝을 지은 10여 개 팀의 발표자들은 ‘이 문제를 왜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지’ 사업구조를 재확인했다. 학생들은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며 숨을 고른다.
 이곳은 흔히 보던 전공수업 현장이 아니었다. 한 학기 동안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서울대 기계공학부의 캡스톤디자인 수업 풍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안성훈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사진)가 있다. 
 안 교수의 수업엔 교과서가 없다. 강의 첫 차수부터 종강까지 비즈니스 현장의 문제의식으로 가득하다. 그것도 전공서적이나 연구실 내부가 아닌 산업과 사회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문제들이다. 안 교수는 “기업의 기술적 애로사항, 학생 개인의 관심사,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사회 문제를 포함한 혁신 기술 원조까지 크게 세 갈래에서 주제를 끌어온다”며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하는 과정 자체가 곧 학습”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발표에서도 한 팀은 기업 공정 자동화 문제를, 또 다른 팀은 탄자니아 농업 생산성문제를 사업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개강 후 한 달간 학생들은 철저하게 사업 아이템 발굴과 시장검증에 집중했다. 이 과정을 도와줄 전문가 특강이 틈틈이 배치됐다. 안 교수는 학생들을 연구실로 불러 일대일 지도를 했다. 교수에게 만만찮은 수업이다.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떤 기업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들어야 하는가, 실현(사업화)가능한가를 먼저 물었다. 이날은 3월 한 달간의 시장탐색을 정리하는 첫 발표날이었다. 학생들은 팀별로 아이템의 사업화가능성을 설명했다. 발표는 비교적 짧았지만 질문은 길었다. 안 교수는 “이 수업은 발표를 거듭하면서 주제가 바뀌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초기 아이디어를 고집하기보다 시장과 기술 검증을 통해 계속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 팀이 한 달 사이 아이템을 수정하거나 방향을 전환했다.

 탄자니아의 캐슈넛 가공 문제를 주제로 발표한 한 학부생 팀은 변화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팀원 나현준 씨(기계공학부 22학번)는 “처음엔 ‘탄자니아에서 창업을 해보자’는 막연한 목표로 시작했지만, 조사과정에서 캐슈넛 가공과정의 손실률 문제를 발견했다”며 “지금은 전처리 공정개선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313동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1층 홀에서 '학제간 캡스톤 설계' 수업 모습. 안성훈 교수(맨왼 쪽)가 학생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아이템으로 창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 역시 현재로선 확신보단 고민이더 크다. 나 씨는 “문제설정 자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며 “이 주제로 창업하는 게 맞는지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라고 말했다. 다른 팀원도 “창업이라는 게 쉽지 않은데, 주제 자체도 낯설다보니 방향성을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오히려 수업의 핵심이다.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이 시장은 충분히 큰가?” “왜 지금 이어야 하는가?” “기술적 차별성은 무엇인가?” 발표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방어하고, 때로는 스스로 수정했다. 홀을 오가던 타 전공 학생, 연구자들도 발길을 멈추고 수업을 참관했다. 강의실은 평가의 공간이 아니라 열린 검증의 공간이었다. 안 교수의 수업 방식 역시 철저히 실전 중심이다. 매주 팀별 프로그레스 미팅이 진행되고, 발표 전에는 반드시 피드백을 거친다. 이달부터 특허 전략, 시제품 시연·개선(prototyping), 투자설명(IR) 등 창업실무교육이 이어진다. 다음달엔 시제품 제작과 사업화 전략이 본격화된다. 6월에는 한 학기 성과를 집약한 발표와 경진대회가 열린다. 이처럼 강의계획서는 흡사 스타트업 액셀러 레이팅 프로그램에 가깝다.
 이 수업이 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끄는 건 한 학기만에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공학부 석사과정 박소은 씨는 지난 학기 안교수의 창업 관련 대학원 수업을 통해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구체화했다. 그는 ‘무바늘 약물 전달 기술’을 주제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팀을 꾸려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특허 1건도 출원을 마무리 중이다. 박 씨는 “처음엔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했는데 교수님과 멘토링을 거치고 타 전공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다보니 1차 시제품까지 나왔다. 올 9월 개업을 목표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 수업의 강점으로 ‘제약 없는 환경’을 꼽았다. 반면 일부 학부생 팀에게 이 수업은 ‘도전의 장’에 가깝다. 나현준 씨는 “창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이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금도 있지만,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 팀은 우선 ‘돈을 벌만한 아이템’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현재는 사업화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건 창업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 강의는 서울대 앵커(옛 라이즈)사업단의 ‘글로벌 챌린지 캡스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된다. 안성훈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다. 학제 간 협업과 산학연 연계를 핵심으로 한다. 수업에는 기계공학부 외에도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가와 대면 연결도 이뤄진다. 강의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창업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었다. 성과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세팀이 실제 창업으로 이어졌고, 일부는 매출과 투자 유치 단계까지 진입했다. 특허 출원과 시제품제작도 다수 진행됐다. 안 교수는 “첫 학기였음에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며 “올해는 참여 인원이 늘어난 만큼 더 다양한 분야에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강의실의 분위기다. 발표를 마친 학생들은 곧바로 교수와 동료들의 질문을 받았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공통적으로 ‘실행’을 향해 있었다. 이날 10여 개 팀의 창업 기획 발표를 경청하던 안 교수는 이렇게 수업을 마무리 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문제의식이 꼭 창업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팀별로 협력해서 아이디어를 발굴·개발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등 창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겁니다. 다들 아시겠죠? 그럼 오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출처 : 교수신문(https://www.kyosu.net)
2026.04.13
최성욱 기자(ongug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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